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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연고확립에 방해된 팀은 무연고팀인가?
작성자
장우진
날짜
2017/09/03

"한 구단은 한 지역에 자리잡아 경기를 치러야 한다. 연고를 정해놓고 여기저기 경기장에서 하는 것, 복수 연고를 취하는 것은 연고 개념이 부족한 것"

 이 말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만약 충청도를 연고로 하고 동대문운동장같은 타지역 경기장을 주로 이용한다면 충청도 연고라고 할수 없겠죠. 단, 연고제 정착이 안됐다고 할 뿐이지  충청도 역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동대문LG 구단도 때때로 다른 경기장을 쓰기도 했는데, 연고제 확립이 안 됐다고 말하지 연고 개념이 없었다며 역사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서울에 세 구단이 몰려있고 자주 타구장 이용했으니 무연고팀이나 마찬가지"

 이 또한 연고제 정착에 걸림돌이 됐을 뿐, 대부분 경기는 연고인 서울에서 치뤘는데 무연고 유랑구단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안양 역사 부터를 진짜 연고라고 주장해 지금의 서울 복귀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울공동화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 런던에도 다수 팀이 있지만 각각 경기장을 갖고 있어 북런던 더비라든가 정착이 잘 돼있습니다. 정책 공문에서도 나와있듯이 동대문경기장 트리오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든가 각각 경기장을 세워 연고지 균형을 맞추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책의 취지에는 단지 도시연고 정착만이 아니라 월드컵 유치까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목동-동대문-잠실 같이 전용경기장이 아니더라도 서울을 나눠 정착할 수도 있었지만, 월드컵에서는 전용경기장을 쓰기 때문에 '전용경기장 건립 아니면 타지역으로 분산'이 된 것이지요. 당시 유공과 일화는 각각 부천과 천안이 전용경기장 설립 등을 약속했기 때문에 이전했습니다. 


"전용구장 설립에 힘쓰지 않았다"

 서울 구단들이 안 나가다가 정부 명령으로 1996년이 되면 더이상 서울에 잔류할 수 없었는데, 1995년 초 공문이 내려온 즈음 LG는 뚝섬에 무려 돔경기장을 건립할 계획을 세웁니다.그러나 용도 논란, 특혜 의혹, 외환 위기 등 여러 문제로 결국에는 지금의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대신 생기게 됩니다. 또한 서울에서 전용구장을 세우는 것은 지방에서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이는 당시 축구협회장 정몽준의 말을 듣고도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지금 당장 서울 이랜드 FC에게 경기장 설립을 요구한다고 생각해보아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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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경기장을 세우지 않았으니 정당한 처사"

서울공동화는 기본적으로 강제적인 정책입니다. 경기장 설립은 무리한 요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을 정말 세우려고 했는데 잘 안됐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토지조사사업을 하면서 토지 소유를 증명하라고 했는데,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도 짧은데다가 증명할 길이 없는 경우도 있어서 결국에는 땅을 다 뺘앗기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터무니 없는 정책을 집행한 일제놈들을 욕하지, 우리 국민들 책임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우리 구단은 서울에 잔류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처구니 없는 조건을 맞추지 못하고 등 떠밀리듯 쫓겨났는데 우리가 스스로 걸어나갔다는 듯이 말하는 것은 피해자가 처신을 잘 못했다며 가해자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일과 같습니다.


"서울구단들은 큰 투자와 노력 없이 운영해"

 지방 신설 구단은 여러모로 홍보를 해야겠지만 수도인 서울에서는 그 정도로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서로 사정이 다를 뿐인데, 홍보가 적어도 보는 사람 많다고 서울 구단들을 나태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게다가 LG는 1991년 처음 영업과를 신설한 구단입니다.



"안양에서 야반도주한 도리 없는 팀"

 종종 다른 경기장 쓰고 그랬던 것은 지역연고 정착 방해 요소라고 할 수 있습 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LG치타스는 서울 팀이 아니었다'라는 식으로 말해도 될까요. 도시지역연고제를 통해 명백한 연고가 있지만 다른 곳 돌아다니는 것을 제재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때부터가 진정한 연고라며 애써 그 전의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프로축구 초반 전국 순회라면 모를까, 90년대라면 그래도 자기 집이 어디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따금의 외박으로 인해 집의 의미가 약간 약해지기는 해도 집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 역사기 안양부터 시작이라는 궤변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전에 연맹은 월드컵 유치를 위해 그렇게 고생을 하더니 99년에 다시 서울 연고 팀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서울에 축구 팀을 없애니까 흥행이 저조한 게 당연합니다. 신생팀 창단 우선, 그 다음이 기존팀 이전인데 비용 문제나 기타 기업 사정으로 신생팀 창단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엔 창단팀 우선원칙을 폐지하게 됐습니다.
 당시 성남, 부천에 있던 옛 서울 팀들의 복귀에 대해서는 한웅수 단장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은 우리에게 우선권이 있다. 성남과 부천 관계자들과 서울 입성에 대해 상의했는데 두 팀은 팀 사정을 이유로 서울 연고지 이전에 관심이 없다 고 했다" 이후 서울 이전을 원하던 부산 아이콘스가 계획을 철회하며 우리가 단독후보가 되었고 2004년 서울로 복귀했습니다.
 조금 서운하게 느낄 순 있겠지만 우리가 안양 창단 팀도 아니고 원래의 서울로 돌아가는 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닙니다. 응원하던 팀이 떠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역사를 왜곡하며 서울팬들에게 욕설을 서슴치 않는 팬들에게는 위로할 마음이 들지 않기 마련입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출입금지입니다.

저는 아무리 잘못된 글이라도 천 년 만 년 남아야 된다고 봅니다
독일에서도 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인 독재자와 그에게 동조한 국민들에게 반면교사를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전범국가지만 역사교육 잘하기로 소문난 독일에서는 유대인 학살이 없었다라고 말하면 경찰에 잡혀가기 전에 사람들한테 맞아죽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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