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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호]그 남자의 이야기, 세르비아 특급 데얀의 My story

    [2008/03/05]
이 기사는 데얀 다미아노비치 선수와의 인터뷰를 ‘자기 소개’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FC서울에 온 것이 마냥 행복하다는 ‘그 남자’ 데얀 처럼, 이 글을 읽는 FC서울의 팬 여러분들도 새 식구를 맞는 행복함을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집자 주

데얀 다미아노비치, 그게 누구냐고요? 이제부터 소개할 ‘그 남자’의 이름입니다. 그럼 ‘그 남자’는 누구냐고요? 바로 접니다. FC서울의 새로운 가족이 된 데얀, 바로 그 남자입니다.

FC서울의 팬 여러분과의 첫 만남 때문일까요? 좀체 떨리는 심장이 진정되지 않는 지금, FC서울의 가족이 되기 까지 걸어왔던 먼 길들이 생각납니다. 새롭게 시작될 삶 앞에 서 있는 지금 많이 떨리지만, 새로운 인연이 너무나 소중하기에 내 소중한 인연인 당신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괜찮으시죠? 앞으로 그려나갈 FC서울에서의 데얀의 삶이 있기 까지, 데얀이 살아온 나, 축구, 그리고 삶.
그 삶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1981년 7월 27일 보스니아, 그곳은 전쟁 중이었어요. 지금 현 국적은 세르비아지만 난 전쟁이 한창이었던 보스니아에서 태어났죠. 전쟁을 피해 세르비아로 오게 된 거구요. 아마도 그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해외로 나가지도 못했고 심지어 집밖에 나가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만큼 불안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삶이 반복되던 10살 무렵,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렇잖아요? 저도 똑같이 친구들이랑 축구 하는걸 좋아했어요. 하루는 한창 재미있게 축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코치 선생님이 와서 갑자기 축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 하더라고요. 전 축구가 좋았고, 그렇게 축구선수로서의 삶을 시작했죠.

처음 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팀은 당시 유고 1부에 있던 꽤나 좋은 팀이었어요. 축구를 권유했던 코치님이 저와 친구 몇 명을 데리고 갔고, 그 곳에서 친구들이랑 함께 선수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울하기만 했던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축구를 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마냥 신이 났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소속되어 있던 팀은 굉장히 프로페셔녈했던 팀이었어요. 뛰다 보니 자연스레 기회가 생겼고, 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그렇게 축구를 시작해 세르비아의 3~4클럽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FK 베자니야에서도 선수생활을 했죠.
그래도 불안한 환경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사회가 불안하니 축구도 불안했어요. 축구를 할 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그만큼 축구가 좋았지만, 환경은 그렇지 못했죠. 연봉도 적었고 자연스레 삶은 점점 어려워졌어요. 하나하나 다 말할 순 없지만 정말 좋지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드라간의 이야기가 그렇게 부러웠는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세르비아 선수 드라간과 한국의 축구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좋다고 하더군요. 드라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엇보다 팬들의 뜨거운 열정이 좋았습니다. 유럽보다 한국은 축구를 더 잘할 수 있다고 느낄 만큼 훌륭한 선수들도 많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가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무엇 보다 드라간이 적응했으니 나 역시도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죠.
한국에 와보니 정말 적응하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한국이 너무 좋았으니까요.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친절한 사람들, 맛있는 음식 등 모든 것이 좋습니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에게 친절한 K리그 팬들이 고맙죠. 저에게 있어서 한국은 최고의 나라입니다. 다만, 아침에 일찍 일어 나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에 힘들었지만(웃음) 지금은 뭐, 아주아주 잘 일어나죠. 늦잠도 안 자고요.

한국이나 팀에 적응이 되었다 싶을 때쯤 전 새로운 둥지에 다시 적응을 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바로 지금. FC서울의 가족이 된 거죠. FC서울에 입단해 처음 마주한 상황은 앞으로 함께 걸어갈 동료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와보니 몇몇 선수들은 대표팀에 가 있었고, 몇 선수들은 부상을 당했더군요.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아직 다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대부분 다 친해졌습니다. 아직은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해서 별명을 부르지만 말이죠.

동료들에게 한국어도 배우고 있어요. 아직 많이 늘지는 않았지만 연습경기 때 한국말이 생각나지 않아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한국어를 알아야 우리 팀의 플레이에 녹아들 수 있으니까요. 그나마 아디가 영어 단어 몇 마디라도 해서 다행이에요. 아디 덕분에 팀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전지훈련 때 같은 방을 쓰면서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아디는 정말 최고의 친구입니다. 아침잠이 많은 저에게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무척 힘듭니다. 그럴 때마다 아디가 아침에 저를 깨워줬습니다. 정말 아침에 룸메이트를 깨우는 기술은 아디가 최고입니다.
좋은 선수들, 아니, 좋은 친구들 덕분에 난 이미 FC서울에 빠져 버렸습니다. 우리 팀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많습니다. 이을용, 이민성을 비롯해 부상에서 돌아온 김은중도 굉장히 좋은 선수 같아요. 그들과 함께 잘 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올해 새롭게 입단한 선수들 역시 무척 기량이 좋은 것 같아 자극도 받고, 배울점도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좋은 선수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명문구단이 바로 그런 것이니까요. 명문구단의 일원이 됐으니 저도 무언가는 해내야겠죠. FC서울은 올해 좋은 성적으로 명문구단임을 증명할 것입니다. 귀네슈 감독님의 지휘 아래 FC서울은 올 시즌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감독님이 우리들을 믿는 것처럼 우리도 그 분을 믿으니까요. 나 역시 최선을 다해 팀에 도움이 될 것이고요. 아들처럼 대해주시는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잘 해낼 것입니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목표도 바로 FC서울의 우승입니다. FC서울의 가족으로 진심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내고 싶습니다.

나는 뛸 수 있고, 슈팅도 할 수 있고, 볼을 다룰 줄도 알고 있습니다. 네, 물론 브라질의 호나우디뉴만큼은 아니지만 할 수 있습니다. 90분 내내 모든 체력을 다해 뛰는 한국 선수들이 가끔 중요하지도 않은 순간에도 나를 강하게 수비하지만, 나는 기다릴 것입니다. 그들이 지칠 타이밍을 노리며 동료들과 함께 생각하고 뛰다 보면 골도 넣을 수 있겠죠. 그러다 보면 팀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요?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목표는 나, 그리고 내 팀 FC서울의 본 모습을 보이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3월 9일, 난 FC서울의 검붉은 유니폼을 입고 나를 지켜보는 FC서울 팬들을 만나게 되겠죠. 작년엔 아쉽게도 무승부가 많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골만 넣는다면 결코 지지 않는 팀이라는 것이겠죠. 적어도 FC서울은 내가 보는 한 이길 줄 아는 팀입니다.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잘한다 말하는 팀도 결국 우리에게 지게 될 겁니다. 저는 그것을 확신합니다.

축구는 정말 예측불허입니다. 1분마다 상황이 달라지니까요. 그래서 축구라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정답이겠죠. 그래서 장기적인 목표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길고 길게 말씀 드린 단기목표, FC서울의 우승만 생각하겠습니다. 장기적 목표요?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아직은 만들어 가야 할 이야기들이 더 많으니 제 이야기는 이쯤 하겠습니다. 그저 푸른 잔디 위에서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실, 아직은 FC서울 가족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언젠가 세르비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제 모습을 보시는 FC서울 팬 여러분이 절 보며 반가워 하시는 그 날, 즐라탄, 베르바토프, 물론 저도 좋아하는 별명이지만, 그저 데얀! 그 자체로 불리게 되는 그 날, 그런 날도 그려보며 그저 열심히, 또 열심히 뛰겠습니다.

3월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글=공희연 FC서울 명예기자
/사진=강동희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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